8월 12일 위즈도밍의 클라이막스는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사진전>이었다. 사진 찍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브레송이라는 그 이름은 지금도 사진계의 전설로 남아 있다. 특히 그가 남긴 '결정적 순간'이라는 표현은 사진, 특히 스냅사진의 영감을 느끼게 해주는 순간을 말하며,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이라는 개념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는 개념이다. 사실 브레송 덕분에 스냅사진의 문법이 정립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가 의도하고 진행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의 방대한 작업량이 자연스레 문법을 만들어 준게 아니었을까. 실험에서도 표본이 많을수록 논리가 성립되는 것처럼.


이날 프로그램의 핵심은 '사진의 기호'을 파악해서 사진을 스토리텔링해보는 것이었다. 예술은 꼭 한 가지 방향으로 해석되어야할 당위성은 없기에 이런 사진해석은 일종의 유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의도된 혹은 우연히 프레임 속에 담긴 브레송 사진의 기호들은 좋은 요깃거리라 확신했다. 특히 그의 가장 유명한 사진인 <생-레자르 역 뒤>라는 사진은 개인적으로는 특별히 마음에 들어하는 사진은 아니지만 기호학적으로는 무궁무진한 이야깃거리가 담긴 사진이다.




물 위로 뛰어가는 인물과 물에 비친 그의 모습의 유사성, 반영 위에 서있기에 물과 그가 존재하는 공간이 하나로 보인다는 점. 이것은 왼쪽 위편의 'RAILOWSKY'라는 단어에서 '하늘'이라는 공간으로 치환된다. 텍스트 오른편의 댄서(아마도 발레리나)의 모습과 주인공의 모습이 비슷한 것도 감정을 증폭시킨다. 마지막으로 그는 왜 물 위로 뛰어든 것이며, 1초 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하게 하는 점. 지표 기호의 속성도 한꺼번에 가지고 있다.


브레송의 사진은 올해 초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된 <데이비드 라샤펠 사진전>에 비해 기호학으로 해석하는 재미가 약간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라샤펠은 그의 메시지를 드러내기 위해 상징기호를 중심으로 한 '이해하기 쉬운 기호 문법'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스냅의 거장인 브레송은 그 순간에 들어올 수 있는 기호가 있고, 아닌 기호가 있다. 그래서 사진마다 담겨 있는 해석의 잠재성이 천차만별이다. 그럼에도 위와 같은 사진처럼 심심하지 않은 사진들이 꽤나 많이 있었다. 이런 특징은 얼마 전까지 진행했던 <마크 리부 사진전>과도 이어진다. 마크 리부가 브레송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다큐사진의 순수미학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는 브레송은 라이카를, 종군사진가의 전설 로버트 카파는 콘탁스를, 방대한 작업과 포토스토리의 선구자인 유진 스미스는 올림푸스 펜F를 주로 사용했는데, 조금만 살펴보면 그들 작업의 특성과 맞아떨어지는 선택이 아닐까 싶다. 라이카는 다른 카메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곡선 위주의 디자인이 특징이다. 휴머니즘을 담았다고 평가받는 라이카의 디자인이 브레송의 작업 스타일과 맞아떨어진 것은 우연이 아닐 듯하다. 게다가 라이카의 초기 렌즈는 콘트라스트가 비교적 옅은 편이라 부드러운 느낌을 표현하기에 좋다.


반면 전쟁의 심각성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느끼고 간 사나이 카파는 보다 기계적인 느낌의 콘탁스를 썼다. 라이카가 청춘만화에서 지구를 지키는 로봇같다면 콘탁스는 트랜스포머 같다. 그리고 소나,테사, 비오곤 등 칼 짜이즈 렌즈는 색감이 강하고 콘트라스트가 강하다. 전쟁의 순간을 표현하기에 적절했으리라. 반면 유진 스미스는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아마 가장 작업량이 많은 사진가일 듯한 스미스는 올림푸스의 하프카메라인 펜F 시리즈를 사용했다. 지금의 미러리스 카메라인 올림푸스 펜의 원조 모델이다. 하프카메라는 기존 필름 한 면에 두 장을 찍을 수 있기 때문에 36장 필름을 끼우면 최소 72장을 찍을 수 있다. 전쟁터를 비롯해 세계 곳곳을 누빈 스미스가 찬사한 카메라답다.


어쨌든 브레송의 사진은 명불허전이다. 올해 열린 대규모 사진전이 '데이비드 라샤펠', '얀 샤우덱', '마크 리부', '내셔널지오그래픽' 그리고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올해는 사진가들에게 풍년인 한 해가 될 듯한 만족감을 느끼며 글은 여기서 마무리.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사진전>


2012. 5. 19 ~ 9. 25

11am ~ 8:30pm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Posted by Jimiq :




8월 12일에 사진위주갤러리 류가헌에서 위즈도밍을 진행했습니다.

타이틀은 "브레송과의 새로운 만남, 이미지 기호학" 이었죠.


오후 2시에 만나 류가헌에서 진행 중인 <겹겹> 사진전을 자유롭게 감상하고,

돌아와서 이야기를 나눴죠. <겹겹>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기호는 무엇일까?






그리고 기호 활용의 대가인 '데이비드 라샤펠'을 비롯해 체코의 '얀 샤우덱',

올해 갤러리나우 작가상 수상자 캐서린 넬슨 그리고 제가 찍은 사진들을 가지고

사진을 감상하는, 해석하는 팁을 공유했습니다. 이미지 기호학이 아무래도 학문

적인 영역이다보니 최대한 가볍고 쉽게 풀어내기 위해 퀴즈 형식을 가미했죠.


몇 장은 선물로 드렸습니다 :)


재미있게 들어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류가헌에서의 시간이 끝나고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사진전>을 감상했어요.

예술은 광고와 달라서 우리가 그 메시지를 정확하게 해석할 필요는 없죠.

단지 사진의 해석이 작가나 비평가의 영역이 아니라 대중들이 사진예술을

더욱 풍요롭게 즐길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브레송 사진전에 대한 리뷰는 조금 더 후에 올릴게요.^^

즐거운 위즈돔이었습니다.


Posted by Jimiq :

그 어느 날보다 비가 많이 내리는 오늘은 제 67주년 광복절이다. 대통령은 독도를 방문하고 왔으며, 독도 및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한-일 양국의 관계가 심상치만은 않은 요즘이다. 지난 달 일본의 니콘 살롱(신주쿠)에서 한 사진전이 열렸다. 그 사진전은 전시장을 제공한 니콘의 번복으로 열리지 못할 뻔 하다가 여러 간섭 속에서나마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이 사진전을 둘러싼 문제는 사진전을 준비한 '겹겹 프로젝트'의 진행자인 사진가 안세홍의 SNS를 통해 국내외로 알려졌다.

그리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일본 전시를 마치고 광화문 서촌에서 한국 전시를 시작했다.


<겹겹> 사진 전


2012. 8. 7 ~ 26

사진위주갤러리 류가헌



이날 류가헌을 방문한 이유는 소셜벤처 위즈돔(http://www.wisdo.me)에 개설한 "브레송과의 새로운 만남, 이미지 기호학"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프로그램의 서두를 열 순서로 <겹겹>을 감상하기로 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목요일과 이날(8월 12일) 이틀에 걸쳐 전시를 보았다. 페이스북을 통해 안세홍 작가님을 현장에서 만날 수 있었고, 길지 않았지만 몇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비가 많이 왔던 날이지만 갤러리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결코 적지는 않았다.



신주쿠 니콘 살롱에서 전시한 작품 중 두 점을 제외한 모든 사진들이 전시되어있다. 할머니들의 표정에서 위안부로서의 그때가 어떤 삶을 남겨주었는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웃는 표정의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광복 후 67년, 그동안 우리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 일본의 형식적인 사과와 무시의 반복이 되려 할머니들에게 더 깊은 상처를 남기지 않았을까.


사진 속의 할머니들은 이제 몇 분 세상에 남아있지 않으시다.



전시장의 입구에는 겹겹 프로젝트를 대표하는 사진 한 점이 걸려 있다. 이 사진을 통해 내가 당시의 쓰라림을 모두 이해한다는 것은 어폐겠지만, 많은 관객들이 이 사진을 기억 속 베스트 컷으로 꼽을 정도로 힘을 가진 사진이다. 오른편을 보면 겹겹 프로젝트에 대한 유인물과 방명록, 지속적인 작업으로 이어가기 위해 의견을 묻는 설문지 등이 놓여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사진이다.


다른 사진에 비해 할머니의 힘이 느껴져서였다. 그 감정이 한탄이었을지 분노였을지는 모른다. 다만 지팡이를 꽉 잡은 왼손과 힘있게 움직이는 오른손, 무언가를 말하는 입 모양과 눈빛(그리고 적절한 로우 앵글)이 나에게 그 힘을 느끼게 해준다.



비내리는 오늘의 광복절을 전후로 한일 관계가 다시금 미궁으로 빠지고 있다. 정치적 의도를 가진 퍼포먼스라든지, 대통령의 행보를 비판 혹은 지지하는 논쟁이라든지. 독도든 위안부 문제든 박종우 선수의 동메달이든. 그러나 무엇 하나 해결하지 못한 채로 우리는 예순 일곱 번 째 광복절을 맞았다. 비가 세차다.



마지막으로 안세홍 작가님을 찰칵. 위안부 문제로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겹겹 프로젝트(http://juju-project.net/ko/)'의 대표다. 대중들 역시 위안부 문제가 심각한 사안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우리가 가져온 변화는 미미한 것이 (민망하지만)사실이다. 그 변화를 이끌어가려는 안세홍 작가와 겹겹 프로젝트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어야 하겠다.


류가헌에서 전시를 마친 뒤 겹겹 사진전은 오사카에서 이어진다.



Posted by Jimiq :

 

소셜벤처 위즈돔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지혜 공유(확산) 플랫폼인데요. 재밌는 프로그램들이 많아요.

 

홈페이지는 http://wisdo.me 이고요.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 사진전>에 맞춰

사진 감상팁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개설했습니다.

이번 주 일요일이네요.

 

두근두근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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